나는 소비자행동 전공 관련으로 학부와 석사 졸업을 했다. 첫 직장은 그 전공을 살리지 못했지만 과감히 퇴사를 하고 그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커리어를 찾았다. 돌고 돌아 시작한 내가 고집한 내 전공. 주류의 제품이 아니라 비주류 제품이었지만 내가 전공해왔던 것을 살려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열심히 일했다.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많은 것들을 느꼈고, 한계를 많이 봤다. 그래도 뭔가 내가 이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가 아깝기도 했고, 지금의 나에게 맞춰 놓은 삶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는 이 길이 정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과 용기가 없어서 그만두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운이 좋았던걸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면서 느꼈던 내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나는 내가 전공해왔던 것을 산업에 써먹기 위해 어떻게든 붙들고 매달렸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놓게 되었다는 사실에 난 허무하다, 예전부터 나는 내 전공으로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더니만 어쩌면 정말 나는 이쪽 길로 가는 게 아닌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 내가 다른 길을 찾은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 생각이 들고 있다.) 내가 느꼈던 또 다른 허무함은 직장인의 삶에 대한 허무함이다. 직장인의 삶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공무원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직장인의 삶을 긍정적이라고 바라보지 않았던 부류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회사 밑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안정적이다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은 내 밑에 딸린 식솔들이 없어서 지금 이 상황에 의연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당장 먹여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기대감도 있었다. 나는 꿈이 잘 맞는 편인데 사실 연초부터 기분 좋은 꿈들을 이상하리만큼 많이 꿨었다. 그 당시에 프리랜서 사이트에 등록해서 외주 일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혼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이만큼 벌 수 있구나를 느꼈던 순간이었고, 꿈자리가 좋았던 것도 연관지어 보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일정하지 않은 일거리에 대해 두려웠기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해야겠다고 생각으로 다시 또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퇴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와서 나는 다시 또 그 연초에 꾸었던 좋은 꿈들이 생각났고,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다이나믹한 내 인생이 너무 궁금해졌다.
물론 불안감도 있었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무언가 생산적인 걸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이 조금 있는 편이고, 쉬어도 편하게 쉬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아무런 계획없이 당장 퇴사를 하게되면 어떨지 예상이 되었다. 나와 함께 고민해주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나에게 어떤 일이 잘 맞을까, 내가 지금껏 해왔던 나의 커리어를 다시 살리는 것이 맞을까 등 여러가지 생각의 뭉텅이들이 머릿속에서 탱탱볼처럼 튀어다니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불안감도 느꼈다.